2014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국빈 방한했을 당시 공식 증정 국례품(國禮品)으로 오설록의 녹차 ‘일로향’이 선정되며 오설록은 국가대표 차의 영광을 누렸다. ‘일로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북미 차 챔피언십’ 덖음차 부문 1위에 네 번이나 선정되며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은 차. 2015년에는 브랜드 협찬 없이 진행돼 세계 유명 차 전문가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북미 차 챔피언십’에서 오설록의 프리미엄 녹차 라인인 ‘세작’ ‘우전’ ‘일로향’이 경쟁이 가장 치열한 덖음차 부문 1·2·3위를 모두 석권하기도 했다. ‘일로향’은 1999년 제2회 중국 차박람회에서도 ‘세계 명차’상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오설록은 40년간 유지해온 ‘아모레퍼시픽 사업부’에서 벗어나 차 전문 브랜드로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19년 10월 독립법인으로 새출발을 했다. 지난 3월 용산 아모레퍼시픽 세계본사 사옥 1층에 있는 티하우스 오설록 ‘1979’에서 만난 서혁제 오설록 대표이사는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전 세계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출국을 앞둔 그는 “명차 라인부터 MZ세대가 선호하는 블렌디드 티까지 두루 갖춘 오설록은 직접 고객과 만나는 매장을 기반으로 비대면 이커머스에 진출해 영역확장을 해왔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오설록은 2004년 ‘오설록 티하우스 명동점’을 필두로 한동안 전국에 20곳이 넘는 ‘오설록 티하우스’를 운영했었다. 그러다 ‘매장 수와 고객이 정비례하지 않음’을 간파하고 1호점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명동점을 2021년 12월 31일 과감하게 철수했다. 티하우스를 대폭 줄이는 대신 ‘찾아주는 한 분 한 분 모두가 차를 제대로 즐기게 해야 한다’라는 모토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 오설록 헤리티지를 덧입혀 브랜딩한 7곳의 티하우스를 새롭게 오픈했다. 반면 백화점에 입점한 19개의 티숍은 오설록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캐주얼화했다.

오설록 티하우스의 각양각색 매력

분사 후 오설록은 MZ세대가 선호하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같은 신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전략 변화와 아마존을 통한 온라인 채널 해외 진출로 40여년에 걸친 기나긴 적자의 터널에서 벗어나 이제 흑자로 돌아섰다. 분사 직후인 2020년 매출 477억원을 올린 오설록은 그후 2년 만에 매출이 두 배 가까이 급성장하며 도약의 신호탄을 쐈다. 오설록은 지난해 매출 839억원에 영업이익 54억7000만원을 기록하는 흑자기업으로 변모했다. 창사 이래 45년 만에 맛보는 고진감래였다.

오설록의 변화를 두 발로 확인하고 싶은 필자가 체험한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은 차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취향을 보여주려는 플래그십 스토어답게 ‘오감 만족’이었다. 정원이 넓은 1960년대 양옥을 재해석한 매장에서 티 마스터가 직접 블렌딩한 차를 경험할 수 있었다. 시트러스한 제주 유자로 블렌딩한 ‘오설록 시그니처 얼그레이’와 함께 맛보는 티푸드는 한국의 식자재를 활용해 우리 고유의 색과 향미로 빛났다.

외국인을 포함해서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이 서로 이질감 없이 물 흐르듯 오가며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동선 설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인스타 감성으로 충만한 독립된 다실에서 진행하는 ‘오설록 가회다실 티클래스’에서는 차우림 수업을 통해 나만의 블렌디드 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북촌의 한옥이 내려다보이는 3층 ‘바설록’에서 음미하는 논알코올 티 칵테일은 힐링 그 자체였다.

북촌점에서 도보로 8분 거리에 있는 ‘오설록 티하우스 현대미술관점’도 찾았다. 문화 예술을 함께하는 차 문화 발견이라는 주제와 어울리는 국립현대미술관 1층에 자리한 매장은 제주에서 공수한 말차 메뉴 특화 공간이었다. ‘말차 샷 카라멜 로쉐’ 등 시그너처 말차 메뉴는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차향에 취해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었지만,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운 마음으로 곡우 이전 첫물차를 덖은 ‘우전’ 차를 포장해 들고 일어서 그날의 최종 목적지인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와 협업으로 탄생한 한남점은 차와 예술이라는 두 키워드를 제주도로 엮은 차 문화 복합공간이다. 페이스갤러리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작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갤러리로 한남동에 ‘페이스 서울’을 2017년 3월 4일 오픈했다. 한남점은 차와 제주, 그리고 커피, 알코올을 매칭하면서도 오설록의 본질인 ‘차’를 놓치지 않았다.

제주의 현무암과 블랙을 테마로 만든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 안에 들어온 듯한 아우라는 살아있는 모빌(mobile)인 양 필자의 목소리 톤도 저절로 낮아지게 만들었다. 간결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평가받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도 전시되어 있는 케맥스드리퍼로 동시에 우려주는 차와 커피의 앙상블은 시각과 후각 그리고 청각도 즐겁게 했다. 촉각과 맛은 축복이었다.

오직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차와 증류주를 결합해 만든 티 스피리츠(tea spirits)는 오후의 피로를 깔끔하게 씻어주었다. 제주 화산회토가 키워낸 ‘화산암차’와 스모키향 스카치위스키 ‘탈리스커’를 혼합한 칵테일 ‘로키 포트레이트’를 시음해봤다. 알코올로 버무린 티 칵테일이 던지는 매력과 유혹에 빠져 오설록의 고향 화산섬 제주로 몸과 마음이 날아가고 있었다.

 다원에서 테이블까지의 가치를 전달

차를 소재로 한 일본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 나오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처럼 제주도행 탑승권을 예약하며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국내선 탑승터미널 11번 게이트 옆에 자리한 오설록 티하우스 김포공항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한 오설록 녹차 세작을 우려 마셨다. ‘티하우스’인 줄 모르고 커피를 주문하려는 여행객들의 상당수는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카페와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직원이 찻잔을 줄 때 무심코 건네받은 종이를 보니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에서 녹차 웨하스를 받을 수 있는 무료쿠폰이었다. 공짜는 늘 옳다.

제주도에서는 고사리순이 자라는 4월에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 하는데 일기예보와 달리 새벽부터 여우비가 내렸다.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이 있는 서광다원을 찾아 우산 없이 차밭 속으로 스며들었다. 버려진 용암지대를 맨손으로 개간해 광활한 차밭으로 만든 지혜롭고 뚝심 있는 개척자에게 감사하며 우중산책을 누렸다, 짙푸른 찻잎 사이로 새로 돋아나는 연녹색의 여린 새싹 봉오리의 싱그러움을 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전율을 느꼈다. 비를 뚫고 올라오는 풋풋한 연두색 향은 행복이었다.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이미 인산인해였다. 연간 180만명이 찾는 제주 필수 관광코스라는 말이 실감났다. 티뮤지엄에서만 진행하는 ‘티스톤 프리미엄 티코스’는 차를 통해 제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시간여행이었다. 티코스의 파이널 이벤트로 즉석에서 로스팅한 차를 저마다의 봉투에 담아가는 손길에는 수확의 기쁨이 넘쳐 보였다. 서울과 제주에서 만나본 오설록은 ‘다원에서 테이블까지(Farm to Table)’의 가치를 전달하는 ‘티메이커’이자 녹색 힐링 산업의 선발주자로 손색이 없었다. 

주간조선 홈페이지에서 전체기사 보기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4365